2020년 September 22일 By sd2078 미분류

[인터뷰] 최아리 구례 아이놀이모임 회원·황정란 산책도서관 대표

[조영교 기자]

▲ 홍수 피해 상황 당시 홍수 피해 상황
ⓒ 산보고 책보고 도서관 카페

기록적인 두 달간의 장마가 지나갔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언제 그랬나 싶게 장마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한 포기에 5천 원이 넘어가는 배추 가격만이 장마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장마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전라남도 구례 주민들입니다.동행복권파워볼

지난 8월 7일 저녁, 구례 옆 곡성에서는 산사태로 주택 매몰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구례, 하동, 남원 등 일대에는 홍수경보 문자가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섬진강 댐은 8월 8일 오전에 초당 1800톤의 물을 방류했습니다. 결국 섬진강 제방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구례읍내는 순식간에 배로 이동해야 하는 수상도시가 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기와지붕만 남았다… 저지대 구례, 섬진강댐 방류 ‘직격탄’ http://omn.kr/1ojuv)구례 사람들은 바빠졌습니다. 모든 단톡방에서 계속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물에 잠긴 시장과 상가, 축사, 부러진 다리. 사람들은 외지의 가족과 지인들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구례 장날. 근동에서 가장 유명한 구례 오일장은 고스란히 피해 현장이 되었습니다. 수해 입은 상가만 392곳, 목숨을 잃은 가축 15,846마리, 침수된 가구만 1118 곳. 그날 이후 구례는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 9월 14일 구례 시장 내부 9월 14일에 찍은 구례 시장 내부입니다. 대부분 비어있는 상황
ⓒ 구례군민

9월 30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구례는 장마를 떨치고 추석을 맞을 수 있을까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TV로 보던 구례와 다르게 9월 초의 구례 읍내는 언뜻 깔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물이 빠져 나간 시장 내 상가는 텅 비어 있고, 여기저기 무너진 주택과 가게들도 더러 보였습니다. 파워볼

당장 추석장이 열릴 수 있을 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장터를 돌아 골목길도 가보았습니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췄지만 역시 이곳도 양지와 음지가 있었습니다. 언론의 집중을 받은 양정마을과 오일장은 자원봉사자와 많은 구호품이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노년층이 살고 있는 골목의 가정집들이었죠. 이들은 홍수 피해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자원봉사자와 구호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민원도 넣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있던 어르신들을 도운 사람들은 의외로 아이들과 도서관 사람들이었습니다.바로 ‘구례아이놀이모임’과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아래 산책도서관). 수해 복구와는 아무 관계없을 것 같은 이 두 모임은 왜 골목으로 가게 되었을까요? 구례 아이놀이모임의 최아리씨와 봉사활동을 주도하는 산책도서관의 황정란 대표와 지난 12일 어렵게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자원 봉사에 나서다

▲ 9월 14일 구례 읍내  9월 14일에 찍은 구례 읍내 무너진 집
ⓒ 조영교

최아리씨가 활동하는 아이놀이모임은 구례에서 영유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입니다. 이 모임도 군청에서 모집하는 봉사에 자원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동행복권파워볼

“힘쓰는 일이 가능한 봉사자들이 필요했는지 거절당했어요. 홍수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자니 죄책감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봉사를 고민하다 산책도서관의 도움으로 피해 주민과 봉사자에게 쉼터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밖을 돌아다니며 냉커피, 생수를 나눠드리기 시작했어요.”

최아리씨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시장 사람들에게 냉커피를 돌렸습니다. 엄마들은 시장을 돌고 골목길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집기들은 바닥에 쏟아져 있고 물에 젖은 쓰레기가 썩어가며 악취가 가득했어요. 그곳에서 할머니들이 돗자리 하나 펴고 계시더라고요. 뭐하냐고 묻는데 봉사 나왔다고 하니 그런 게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참 난감했어요.”그때 시장이 있는 구례 읍내에서 청소가 80% 정도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안쪽의 가정집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골목살이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입니다. 이분들은 자원봉사자, 구호품의 존재도 몰랐습니다. 집을 치울 기운도 없는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돗자리에 모여 답답한 처지를 한탄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 주소랑 이름,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 청소 봉사활동 모습 침수 피해 가구에서 청소를 돕는 활동중
ⓒ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 카페

당시 구례군청은 수재민 피해 접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연락이 오는 수재민이 받을 수 있는 도움도 안내하고 있었죠. 그러나 골목의 어르신들을 비롯해 구례의 많은 어르신들은 피해를 접수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아마 알았다고 하더라도 수재민 접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피해상황을 보고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엄마들은 이제 냉커피와 함께 종이와 펜을 들었습니다. 수재민 피해 접수를 하지 못한 가구들을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때 구례 공무원들은 매우 바빴습니다. 엄마들은 ‘구례 홍수 피해 가구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황정란 산책도서관 대표가 목록의 결과를 알려주었습니다.

“읍내의 백 가구 정도를 다니며 조사했습니다. 그 중 긴급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서른한 가구를 읍사무소와 의료원에 연계했어요. 이 중에서 산책도서관이 지속적으로 살펴야겠다고 생각한 집들도 있었어요. 여덟 가구는 산책도서관이 지금도 돕는 중입니다. 구례에는 혼자 사는 노년층 가구가 844곳이 있어요. 그중 56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어요. 저희는 그분들의 집에 우선으로 청소를 지원하고 구호품과 밑반찬 등을 나눠드렸습니다.”
  
아이놀이모임과 산책도서관의 회원들은 재난 상황에서 읍공무원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목록에는 숫자로 기록되었지만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입니다. 모두 구례 주민이며 이웃입니다. 피해를 입은 이웃들을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물었습니다.”시장 안에 좁은 집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속 기억에 남아요. 침수 피해 이후 뙤약볕에 수해로 열지도 못한 시장을 다니시다가 탈진해서 쓰러지셨어요. 계속 외롭다고 탄식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라고 황 대표는 답했습니다. 수해복구 지원 활동을 하는 ‘도서관 대표’의 눈이 빨개졌습니다.

냉커피 돌리기와 청소, 피해 어르신 가구 목록 작성 등 이 일도 벅찰 텐데 수해는 봉사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다음 일은 체육관에서 시작됐습니다.

▲ 구호품 산책도서관으로 온 구호품
ⓒ 조영교
▲ 산책도서관 내 구호품 산책도서관으로 들어온 구호품들
ⓒ 조영교
▲ 의료 및 생필품 키트 산책도서관에서 나눠준 의료 및 생필품 키트
ⓒ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 카페

구례 체육관에는 전국에서 들어온 구호품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장 입을 옷이 없다며 하소연했어요. 이유는 구호품을 나눌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산책도서관이 도우려 했으나 군과 민간이 협력할 수 있는 규칙이 없어서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산책도서관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구호품과 기금을 나누는 일을 했습니다.

“파스 같은 간단한 의료품, 비상식량, 옷, 수건 등을 포함한 구호품 키트를 40~50개 정도 만들어 전달했어요. 지금은 긴급한 지원을 종료한 상태라 구호품을 도서관에 비치하고 수재민들이 직접 필요한 물품들을 골라가게 하고 있습니다.”

황 대표가 구호품 배분 기준을 설명하는 중 수재민 한 분이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혹시 몸빼 바지도 있나요?”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묻고는 이내 물티슈, 휴지 등 서너 가지 물건을 품에 안고 감사하단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산책도서관에는 책뿐만 아니라 생필품도 갖추고 있습니다. 구호품은 오시는 분들이 필요한 것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면, 기금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했습니다.”수해 피해 가구에 싱크대를 설치하고 청소업체를 고용하는 비용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이런 직접 지원 외에도 수재민들의 일상 복귀를 돕는 프로젝트 등 간접 지원도 계획 중입니다.”

▲ 커피 만드는 아이들 아이들도 같이 봉사활동을 돕는 모습
ⓒ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 카페

수해 복구 봉사활동엔 어린아이와 청소년들도 작은 손을 보탰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양동이에 커피를 붓거나 색연필을 쥐고 쉼터 안내 포스터를 그렸습니다. 산책도서관을 사용하는 청소년동아리도 봉사활동을 돕고 싶다고 나섰습니다. 현장에서 청소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어린아이들을 돌보거나 시장 곳곳에 안내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아유 정말 천사 같다. 정말 고마워.”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전달하자 할머니 몇 분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워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웃의 어려움에 직접 나서본 아이들이라면 자라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마당인데 황 대표의 얼굴엔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민간단체와 지자체가 협력 가능한 시스템 필요해”

▲ 산책도서관 쉼터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수재민들
ⓒ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 카페

황 대표는 이번 봉사 활동을 진행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너나 없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체육관에 쌓여 있는 구호품들이 3일째 같은 옷을 입은 수재민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녀는 재난 상황에는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지자체가 모든 일을 다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도울 수 있는 개인과 단체들이 많은데도 협력을 가능하게 할 시스템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부분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민간과 지자체 간 원활한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황 대표는 더 많은 것을 남긴 것 같다고 합니다. 그녀는 도서관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공간 이상의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웃과 재난을 같이 극복해나가며 그동안 단절됐던 공동체가 복원된 것 같아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방향이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소를 제공하고 돕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기능과 역할만으로 지역 공동체에 자리 잡기 보다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구례의 추석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로 돕는 이웃이 있으니까요. 추석장은 다시 붐빌 것이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수해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사람 사는 구례입니다.

* 구호품은 9월 22일 화요일에 구례 공설운동장에 위치한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 대책본부’로 이전할 예정입니다.

<산보고 책보고 작은도서관>

– 주소 :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 시장 작은길 24, 성신목재 2층
– 운영 시간 : 화~토 10시~20시 (일, 월 휴무)
– 후원 문의 : 김혜란 010-7216-2437
– 후원 계좌 : 301-0268-3544-91 (예금주 산보고책보고 작은도서관)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sanbogo

검, 보좌관·A대위 휴대전화 압수수색


검찰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군 휴가 미복귀 당일 서씨의 휴가 처리를 지시한 상급부대 지원장교 A대위와 추 장관의 전 보좌관 B씨의 휴대전화를 지난 주말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서씨의 휴가 미복귀 당일 A대위와 서씨가 휴가 연장과 관련해 직접 통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문자메시지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덕곤)는 A대위의 휴대전화와 보좌관 B씨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A대위의 자택과 군부대 사무실 등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통화 내역과 문자기록 등을 복원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해 B씨가 A대위에게 전화를 건 직후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메시지에는 서씨의 휴가 연장이 정상 처리되면 ‘정리된 상황을 서씨에게 직접 전화해 설명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서씨가 A대위와 직접 통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원반 소속 병사가 상급부대 지원장교와 휴가 관련 건으로 직접 통화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검찰은 서씨의 휴가기간 A대위와 B씨가 주고받은 통화·문자메시지 기록 등도 정밀하게 복원하는 중이다. B씨는 서씨의 부탁으로 휴가 연장 절차를 A대위에게 문의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검찰은 추 장관이 B씨에게 관련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6월 14일, 21일, 25일 외에도 A대위와 B씨 사이에 추가 연락이 있었는지, 또 다른 인물이 개입됐는지 등도 조사 중이다.

하지만 휴대전화에서도 외압성 청탁 정황이 발견되지 않고 단순 ‘군 행정 절차상 누락’으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지역대에서 구두 승인이 난 휴가 처리가 서씨의 직속상관인 지원반장 이모 상사가 부재 중이던 지원반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비롯된 ‘해프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A대위와 B씨 역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서씨 휴가에 대한 ‘단순 문의’ 차원이라는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1920년대 타이중 거리 사진서 우연히 포착돼..한국 학자가 찾아내
후손 “사진 몇 장 없었는데 네번째 사진 발견돼 다행”

새롭게 발견된 타이중 의거 조명하 의사 사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0년대 대만 타이중 지광(繼光)거리 모습 사진. 사진 왼쪽 '부귀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찻집 앞에서 조명하 의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서 있다. 대만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상호 조명하의사연구회장은 연구 자료 분석 중 대만 개인 사료 수집가 린위팡(林于昉)씨가 수집한 사진 속에서 조 의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2020.9.21 [대만 사료 수집가 '추혜문고' 린위팡(林于昉)씨 제공]  cha@yna.co.kr  (끝)
새롭게 발견된 타이중 의거 조명하 의사 사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0년대 대만 타이중 지광(繼光)거리 모습 사진. 사진 왼쪽 ‘부귀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찻집 앞에서 조명하 의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서 있다. 대만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상호 조명하의사연구회장은 연구 자료 분석 중 대만 개인 사료 수집가 린위팡(林于昉)씨가 수집한 사진 속에서 조 의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2020.9.21 [대만 사료 수집가 ‘추혜문고’ 린위팡(林于昉)씨 제공] cha@yna.co.kr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일제강점기인 1928년 대만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척살에 나서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조명하(1905∼1928년) 의사가 거리에 선 모습이 찍힌 희귀한 사진이 대만에서 발견됐다.

조명하의사연구회장인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는 22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1928년 의거 직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 의사의 사진을 새로 찾았다면서 해당 사진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1920년대 대만 타이중(台中)시의 번화가인 지광(繼光)거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대만의 개인 사료 수집가인 린위팡(林于昉)씨가 소장 중이다.

사진 속 거리 왼편에는 조 의사가 1928년 5월 의거 당시 일하던 찻집인 부귀원(富貴圓)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가게 바로 앞에 조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서 있다.

같은 옷 입고 있는 조명하 의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0년대 대만 타이중 지광(繼光)거리 모습 사진 속에 우연히 등장한 조명하 의사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왼쪽)과 조 의사가 의거 직후 체포되고 나서 찍힌 사진(오른쪽). 두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찻집 부귀원 근무복을 입고 있다. 오른쪽 사진 속 조 의사는 체포 및 조사 과정에서 구타를 당한 듯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있다. 2020.9.21 [대만 사료 수집가 '추혜문고' 린위팡(林于昉)씨·김상호 교수 제공]  cha@yna.co.kr  (끝)
같은 옷 입고 있는 조명하 의사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0년대 대만 타이중 지광(繼光)거리 모습 사진 속에 우연히 등장한 조명하 의사의 모습을 확대한 사진(왼쪽)과 조 의사가 의거 직후 체포되고 나서 찍힌 사진(오른쪽). 두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찻집 부귀원 근무복을 입고 있다. 오른쪽 사진 속 조 의사는 체포 및 조사 과정에서 구타를 당한 듯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있다. 2020.9.21 [대만 사료 수집가 ‘추혜문고’ 린위팡(林于昉)씨·김상호 교수 제공] cha@yna.co.kr

김 교수는 “당시 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들을 조사하던 중 부귀원 근무복을 입은 청년이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시선이 멈췄다”고 말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조명하연구회회원들과 유족인 장손 조경환씨는 비록 사진 속 인물이 작게 등장하지만 인상착의에 비춰볼 때 조 의사의 모습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사진 속 청년은 조 의사가 의거 후 체포 당시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또 짧은 머리와 비교적 작은 키 등 신체적 특징도 조 의사의 다른 모습과 일치했다.

이 사진은 조 의사가 부귀원에서 일한 1927년 11월부터 1928년 5월 거사 전 사이 기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 조직에 속하지 않고 ‘단독 의거’에 나선 조 의사는 사진과 서한 등 자신의 삶에 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 따라서 그의 모습을 담은 추가 사진 발견에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 발견한 조 의사의 사진은 모두 세 장에 불과했다. 이번 사진 발견으로 조 의사의 사진은 총 네 장으로 늘어나게 됐다.

'타이중 의거' 조명하 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타이중 의거’ 조명하 의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경환씨는 “(대만에 계실) 당시 한 달에 한 번 정도 황해도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셨던 할아버지는 거사 후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해 편지를 읽어보고 다 태우라고 했을 정도로 자신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해 사진도 몇 장 없었다”며 “네 번째 사진이 발견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조 의사의 사진은 독립운동가가 거사 직전 스스로 촬영해 남기거나 체포 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립운동 관련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마치 1920년대 대만 타이중 ‘로드뷰’에서 청년 조명하의 모습이 우연히 발견된 것과 같은 일인 셈이다.

한편, 김 교수는 타이중 일대 현장 조사 과정에서 조 의사가 일했던 찻집 부귀원의 위치가 예전에 한국에서 알려진 것처럼 타이중시 지광제(繼光街) 10호가 아니라 66호임을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여기가 조명하 '타이중 의거' 현장" (타이중[대만]=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8년 5월 14일 조명하 의사가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척살을 시도했던 옛 타이중주도서관(사진 속 붉은 벽돌 건물) 앞 사거리. 지난 2019년 3월 13일 조명하의사연구회 회원인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가 손으로 조 의사가 의거 직전 서 있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2020.9.22  cha@yan.co.kr  (끝)
“여기가 조명하 ‘타이중 의거’ 현장” (타이중[대만]=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8년 5월 14일 조명하 의사가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척살을 시도했던 옛 타이중주도서관(사진 속 붉은 벽돌 건물) 앞 사거리. 지난 2019년 3월 13일 조명하의사연구회 회원인 김상호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교수가 손으로 조 의사가 의거 직전 서 있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2020.9.22 cha@yan.co.kr

조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독을 바른 단도를 들고 타이중시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지나던 구니노미야 대장을 급습했다.

일본 경찰과 검찰은 조 의사가 경호관에게 가로막히자 던진 단도가 구니노미야를 맞히지는 못했다고 발표했지만 구니노미야는 이듬해 1월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90여년 전 조명하 의사의 단도 (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8년 일제 치하의 대만 타이중에서 조명하 의사(1905∼1928년)가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육군 대장에게 던졌던 단도 사진. 이 사진은 국립대만도서관의 근대 도서 수장고에 보관된 1928년 발행 일본어책에 수록되어 있었다. 연합뉴스는 국립대만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수장고에서 작년 5월 이 책 속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2020.9.21   cha@yna.co.kr  (끝)
90여년 전 조명하 의사의 단도 (타이베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928년 일제 치하의 대만 타이중에서 조명하 의사(1905∼1928년)가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육군 대장에게 던졌던 단도 사진. 이 사진은 국립대만도서관의 근대 도서 수장고에 보관된 1928년 발행 일본어책에 수록되어 있었다. 연합뉴스는 국립대만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수장고에서 작년 5월 이 책 속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2020.9.21 cha@yna.co.kr

구니노미야는 일본이 신성시하던 이른바 ‘황족’의 일원으로 당시 일왕의 장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군부와 정계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실력자였다는 점에서 조 의사의 ‘타이중 의거’는 일제에 큰 충격을 안겼다.

조 의사는 거사 직후 체포돼 그해 10월 10일 타이베이형무소 사형장에서 스물셋의 나이로 순국했다.

cha@yna.co.kr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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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살아오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연구위원이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이라는 연구물에서 묘사한 사형 확정자들의 현주소다. 이 연구를 맡은 박형민·김대근 연구위원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60명의 사형 확정자 중 31명을 인터뷰해 기록으로 남겼다.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6년째 사형 확정수로 지내는 사람, 나이도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사형 확정자의 하루는
다수의 사형 확정자들은 정해진 기상 시간보다 빨리 일과를 시작한다. 다음은 한 사형 확정자와 연구진의 대화 중 일부다.

「 연구자= 몇시에 일어나세요?
사형 확정자= 보통 저희 형제들은, 저 같은 경우는 5시에서 5시 반? 저희는 최고수들을 형제라고 하거든요. 형제들은 좀 여기 오래 살다보면 귀가 조금 많이 예민해져요. 그래서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아, 이건 직원이구나. 배식차구나’이렇게 할 정도로 작은 소리에도 깨요.

교정시설 내 ‘최고수’로 통하는 사형확정자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사형 확정자 역시 “다섯 시 정도 되면 일어난다”며 자신의 일과를 줄줄 왼다. 배식 준비와 씻기, 라디오 들으며 아침 식사를 한 뒤 설거지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아침 일과다. 새벽기도를 하거나 2시간 정도 법화경을 한자 공부 겸 따라 쓴다는 사형수도 있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일과를 바쁘게 보내는 이유를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무료한 시간이 주어지는 건 괴롭다는 취지다.

63세가 된 한 사형 확정자는 교정시설에서의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가 36에 들어왔어요. 여기를. 36에 들어왔는데 까끌로(거꾸로) 지금 36이 63이 됐는데…. 36살 때까지는 직장인으로 월급쟁이로 잘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이렇게 이런 신분이 되고 그러니까 마음이 아주 아프죠.”


쇼핑백 접기로 돈 벌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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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 내에서 사형 확정자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의 종류는 제한적이다. 겉으로는 기결수(형이 확정돼 형의 집행을 받는 수용자)처럼 보이지만 사형은 형을 집행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위는 미결수의 신분이다. 미결수지만 주변의 다른 기결수들보다 오래 교정시설에 남을 처지인 셈이다. 이들은 과거에는 이른바 ‘출역(수용자들이 외부 공장 등 작업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2008년 법이 바뀌면서 사형 확정자들도 출역이 가능해졌다. 종이 쇼핑백 접는 일을 하러 출역을 간다는 한 사형 확정자는 “쇼핑백 한 개에 30원가량 받아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 연구자=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요?
사형 확정자= 저 이번에 붓글씨 배웠거든요? 너무 좋아요. 진작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허락이 안 됐다 올해 해줘서 1년 동안 배웠는데 너무 좋아요. 사형수, 집행할 때 까지 가둬 놓는 것만 문제가 아니고 사형수도 교육을 받을수 있고 활동을 할 수 있어야해요. 격리하고 배제시키면 안 바뀔 거거든요.

사형 확정자들이 바라는 ‘다양한 활동’은 주로 교정시설 내 취미활동이었다. 이들은 유기수·무기수와 달리 직업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인문학 강좌나 예술 강좌 등에 참여할 수가 없다.

교정시설 내 사형 확정자들은 바둑이나 서예, 컴퓨터 같은 약간의 취미생활을 배워보고 싶다고 희망 사항을 말한다. 또 “사형수라는 이 명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토로한다. 한 확정자는 “우리야말로 인성 교육이 필요한데, 그런 게 한 번도 없어서 받아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형제도는 유지, 집행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지난해 2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지난해 2월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속한다. 가장 최근 사형이 확정된 사례는 2016년 사형 선고를 확정받은 GOP 총기 난사 임모 병장 사례다. 하급심에서 드물게 사형 선고가 나오기도 한다.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인 안모씨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사형 확정자들은 이렇게 사형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집행은 하지 않는 불확실성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말한다.

「 연구자=사형이 여전히 집행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사형 확정자=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사는 게 아닌데, 또 반복해야하는가. 빨리 결정해줬으면. 아니면 내 스스로 결정 해야 하는가. 하루 하루가 생각과 고민만 늘어나게되고요. 이제 몸도 불편하지만 내일은 더 불편해질 수 있어요. 그런 생각하면 그냥 빨리 해결해줬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일부 사형 확정자는 자신의 삶을 ‘죽은 삶’으로 규정했다.

「 연구자=죽음을 준비하는 삶이잖아요. 사실은 매일이.
사형 확정자= 아니요,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죽은 삶이죠. 진작 죽었죠 전. 다만 세상에서 죄를 짓고 들어와 내가 갇힌자로 오랫동안 살았지만 다시 이 안에서는 죄를 짓고 싶지 않다….

사건에 대한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피해자나 사건에 대해 생각할 때 ‘가해자의 트라우마’ 형태로 죄책감이 나타나기도 한다.

「 연구자=그 때 기억들이,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들이 있나요?
사형 확정자=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 마지막 얼굴. 그 다음에 제 손에 들려있는 칼. 흉기 이런게 떠오르고요. 숨이 탁 막힙니다. 얼굴이 싸늘하며 경직되는 느낌이 들다 금방 또 돌아오는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형수들은 사형제도에 찬성할까

사형제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가 지난해 11월 '세계사형반대의날'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에 사형제도 폐지의 염원을 담은 조명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사형제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가 지난해 11월 ‘세계사형반대의날’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담장에 사형제도 폐지의 염원을 담은 조명을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모순적이게도 다수의 사형 확정자들이 연구자와의 대담에서 “사형 제도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형 제도가 주는 범죄 예방 측면을 강조하는 확정자들의 의견이었다. 반면 한 확정자는 “저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말로 사형 제도 폐지를 희망했다. 그는 “내 한 몸 죽는 것은 죽을 수 있지만, 내가 죽음으로써 내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형벌, 예를 들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제도에 대해서 사형 확정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 확정자는 “들어왔을 당시에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사형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니 그 말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여기를 평생 못 나가고 이걸로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이 발이 땅에 닿아야 하는데 오히려 붕 뜨는, 그런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뉴스의 이면] ‘법정제재 최다’ 보도 반박.. 올해는 종편이 ‘뉴스공장’ 앞서

[김시연 기자]

▲  tbs 라디오 FM <김어준의 뉴스공장> 타이틀 화면.
ⓒ tbs

 보수 언론의 ‘김어준 방송 때리기’에 TBS(서울교통방송)가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중앙일보>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아래 뉴스공장)이 지난 3년간 최다 법정제재를 받은 프로그램이라고 보도하자, TBS가 방송사별 제재 횟수를 공개했다.

이 신문은 지난 1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제재, 다른 방송국 총 횟수보다 많아’ 기사에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 자료를 근거로 <뉴스공장>이 지난 2018년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 4기 출범 이후 법정제재 6건을 받아,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프로그램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뉴스공장> 제재가 다른 방송국보다 많다? “종편 절반 수준”

이에 TBS는 지난 19일 오후 입장문에서 <뉴스공장> 제재 건수가 ‘다른 방송국 총 법정제재 횟수’보다 많다는 <중앙> 기사 제목의 오류를 짚었다.

TBS가 방심위 발표 자료를 토대로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방송사별 법정제재 건수를 따져봤더니 SBS가 18건으로 가장 많았고, MBC 15건, TV조선과 KBS 각각 14건, 채널A 12건, MBN 11건, YTN 8건, TBS 7건, JTBC 3건 순이었다. JTBC를 빼면 TBS 제재 건수는 종편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방심위 법정제재는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과징금 부과 등인데, 비교적 경미한 조치인 ‘행정지도’와 달리 법정제재를 받으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평가에 반영돼 방송사 재허가나 재승인 심사 때 중요한 감점 요인이 된다.올해 법정제재 <뉴스공장> 1건, 채널A <돌직구쇼> 2건, TV조선 7건

▲  2018-2019년 2년간 방송사 방송심의 법정제재 건수 비교(자료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2019 방송통신심의연감’)
ⓒ 김시연

<뉴스공장>은 지난 2018년 2건, 2019년 3건에 이어 지난 9월 14일 ‘이용수 배후설’ 보도로 법정제재(주의) 1건을 추가해 모두 6건이다. 그동안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은 주로 프로그램별 제재 횟수를 앞세워 비판했지만, 방송사 단위로 보면 시사보도 프로그램 비중이 높은 종편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방심위에서 올해 초 발표한 <2019년 방송통신심의연감>에 2018-2019년 2년간 법정제재 건수는 SBS가 15건으로 가장 많고, MBC 13건, KBS가 11건 순이다. 종편은 MBN이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채널A 9건, TV조선이 8건, JTBC 3건 순이었다. 보도전문채널은 YTN과 연합뉴스TV가 각각 4건, 2건이었다. TBS는 같은 기간 6건이다.

올해 상반기 ‘보도교양 프로그램’ 가운데 지상파TV와 라디오 법정제재 건수는 각각 4건, 2건에 그쳤던 반면 종편/보도전문채널은 10건을 기록했다.

2018년 8건으로 종편 가운데 가장 법정제재가 많았던 MBN은 지난해(2019년) 2건, 올해 2건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TV조선과 채널A는 2018년 각각 3건에서 지난해 각각 5건, 6건으로 점차 증가 추세다.

특히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올해 들어서만 법정제재 2건을 받았고, 현재 전체회의에 상정된 ‘김복동 장학금’ 보도까지 포함하면 3건으로 늘어나게 된다. 같은 방송사 <뉴스쇼>도 올해 법정제재 1건을 추가해 2018년 이후 4건으로, <뉴스공장>에 이어 2위다. TV조선도 <뉴스9> <뉴스퍼레이드> <뉴스특보> 등 올해 들어서만 법정제재 건수가 7건에 이른다.

채널A와 TV조선은 지난 4월 ‘공정성·객관성 조항 연간 법정제재 5건 이하’를 조건으로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는데, 현재 재승인 관련 법정제재 건수가 각각 3건, 5건이어서 재승인 조건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관련 기사: TV조선 ‘법정제재’ 추가했지만… “재승인 취소와 무관” http://omn.kr/1owiv)

<중앙>은 지난해 10월에도 ‘”병X” “엿 드시라”··· TBS 제재 13건 중 10건 김어준 방송’이라는 ‘단독’ 보도로 <뉴스공장>을 비판했다.

TBS 관계자는 21일 <오마이뉴스>에 “2016년 9월 방송 시작 이후 지난 4년간 법정제재 6건 발생했는데, 매년 누적 횟수만 따져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면서 “이 가운데 4건은 진행자가 아닌 출연자의 돌발 발언이나 출연자가 제시한 자료 오류 때문”이라며, 일부 언론의 ‘김어준 때리기’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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